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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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5, 화랑고무
지역 지켜온 30세 이상 장수기업, 무려 117개

향토 장수 기업

“세월의 풍화 작용에도 불구하고 오래 지속된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숨겨져 있기에 역사의 값어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대구백화점 유통 60년사에서 발췌)

향토 장수(長壽) 기업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1세대를 지나 2, 3세대로 이어지고 있는 향토 장수 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 경기 침체 장기화의 파고를 넘는 데 기여하며 지역 경제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향토 장수 기업은 오랜 기간 지역의 우수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에서 이뤄낸 이윤을 지역에 재투자하며 지역 경제를 묵묵히 떠받치고 있다.

◆대구 장수 기업

매일신문은 대구시 지정 3030(창업 30년 이상, 고용인원 30명 이상) 기업과 대구상공회의소 회원사 5천여 개사를 기준으로 향토 장수 기업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30년 이상 향토 장수 기업은 모두 117개사로 나타났다. 수명 주기별로는 ▷30년 이상 40년 미만 69개사 ▷40년 이상 50년 미만 25개사 ▷50년 이상 23개사 순이었다.

또 50년 이상 가운데 지역 최고(最古) 기업은 85년 역사의 경북광유(1927년)로 나타났으며, 다음으로 ▷79년 풍국면(1933년) ▷68년 대구백화점(1944년) ▷67년 대철(1945년`자동차부품) ▷65년 남선알미늄(1947년`알루미늄) ▷62년 화랑고무(1950년`지우개) 등의 순이었다.

중소기업이 30년 이상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의 5년 생존율은 46.3%, 10년 생존율은 25.3%에 불과하다.

유통`건설`금융`제조업 분야 등에서 30년 이상 살아남은 향토 장수 기업의 생존 비결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 기업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기업이 있다.

◆한 우물

대구 장수 기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오로지 한 우물을 파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지방국세청 납세번호 1호 기업으로 지정된 경북광유는 1927년 창업 이래 3대에 걸쳐 85년간 유류 판매 외길을 걷고 있다. 국수의 고향, 대구를 대표하는 풍국면은 1933년 창업 이래 줄곧 건면 생산업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1944년 고(故) 구본흥(2006년 별세) 창업주가 설립한 대구백화점(당시 대구상회)은 외지 유통대기업의 무차별 공세에 맞서 지역 유일의 토종 유통업체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967년 정부의 1도 1행 원칙에 따라 세워진 대구은행 역시 지역 금융의 마지막 보루다. 지방은행 중 최초로 설립돼 지난 45년간 지역 금융 활성화 및 지역 밀착 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또 1950년 창업 이후 한결같이 ‘지우개’ 생산에 전념하고 있는 화랑고무는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해 봤을 ‘점보’ ‘네모나’ 등 30여 종의 지우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맛있어요♪ 삼화간장♪' 광고 로고송으로 유명한 삼화식품은 1953년 중구 남산동에서 ‘삼화장유사’로 창업해 장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고 김홍식(2008년 별세) 창업주가 1957년 대구 달성동에 설립한 금복주 또한 오직 술 하나를 고집하며 대구경북 부동의 소주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창업주 이윤석 명예회장이 1958년 설립한 화성산업은 대구 중구 동인동에서 건설업체로 출발한 뒤 1972년 동아백화점 신축 이후 유통과 건설을 양대 축으로 성장해 오다 지난 2010년 유통 부문을 매각했다.

이외 제일제약(1957년), 신광타올(1960년), 한국소방기구제작소(1961년), 고문당인쇄(1962년)는 각각 주사제, 수건, 소화기, 포장 분야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남다른 전문성을 쌓고 있다.

◆변신 또 변신

대구 장수 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변신’이다. 1970년대 쌀독을 대신하는 현대식 쌀통을 생산하다가 자동화기기 부품 업체로 변신한 삼익THK가 대표적 사례다. 회사는 1960년 창업 이래 공구용 줄에서 시작해 70년대 삼익쌀통, 80년대 ‘LM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변화와 기술 개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1954년 자전거 부품 제조회사로 출발한 에스엘 역시 1960년대 차부품으로 업종을 과감히 전환, 헤드램프 등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또 지난 2004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존 삼립산업에서 에스엘로 사명을 변경하며 제2의 변신을 시작했다. 이후 회사는 국내 11개 법인, 미국`중국`인도`슬로바키아 등 해외 8개 법인을 통해 연간 1조5천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며 대구경북 대표 자동차부품 회사로 발돋움했다.

◆장수 기업을 우대하자

장수 기업은 지역 순환 경제를 촉진한다. 지역 자본을 서울 블랙홀로 끊임없이 유출시키는 수도권 금융`건설`유통 등 외지 업체와 달리 지역 생산-지역 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창출한다.

대구시는 이 같은 향토 장수 기업을 발굴`예우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7년부터 3030기업 지정 제도를 시행`운영하며 지방세법에 의한 세무공무원 질문`검사권 유예, 경영안정자금 대출 우대, 공모 사업 평가 가점 부여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새로운 투자유치를 위해 다른 지역의 기업을 대구로 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한 향토 장수 기업이야말로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판단에서다.

향토 장수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으로는 기업 상속 제도 개편이 꼽힌다.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의 ‘주요국의 상속세 부담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상속세 부담은 독일의 10배, 일본의 4.5배에 이른다.

지역 2, 3세 기업인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장수 기업이 많으면 해당 기업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소재한 지역도 함께 발전한다. 장수 기업이 지역과 함께 발전하기 위한 제도적 여건 조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준`노경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