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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상식

지우개의 역사 - 지우개를 최초로 만든사람은 누굴까?
지우개를 발명한 죠셉 프리스틀리
지우개를 발명한 '죠셉 프리스틀리'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사람이 문자 생활을 하면서부터 틀린 글자를 고쳐 쓰는 수고는 시작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축축한 진흙판에 잘못 쓴 글자를 고치기 위해서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야 했다. 파피루스에 잉크로 썼던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젖은 헝겊으로 지울 수 있었다. 잉크가 이미 말라버린 다음이라면 칼날로 긁어내면 되었다.
돌에 새긴 글자도 지울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잘못 새겨진 글자를 쪼아내고 그 구멍을 석회로 메운 다음 새로운 문자를 새기면 되었다. 일본에 유리하게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광개토왕비에 새겨진 글자를 고친 일본인 학자의 수법이 그랬다. 지우개의 원료인 고무는 고무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가공한 것이다. 고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고무나무가 자라는 아마존 강 유역의 원주민이나, 열대의 섬 주민들이었다. 콜럼버스는 1493년에 서인도 제도의 한 섬인 아이티에서 원주민들이 고무로 만든 공을 갖고 노는 것을 보았다. 이 고무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매우 쓸모가 있을 듯한데, 이걸로 대체 무얼 만들지?"
유럽 사람들은 갖은 궁리를 해보았으나 그것으로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우면 녹고, 추우면 굳어서 갈라져버리니, 무얼 만들어봐도 금세 쓸모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고무의 쓰임새를 알아냈다. 1770년 무렵, 산소를 발견한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 죠셉 프리스틀리가 고무의 연필 소자성(消字性)이 뛰어남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고무는 종이 위에 쓰여진 연필 자국을 지우는 데 가장 적당한 물질이다.'

1770년대 프리스틀리가 고무의 쓰임새를 발견하고 2년 후 영국에서 최초로 지우개가 발매되었고, 영국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학생들은 빵 부스러기 대신 고무 부스러기를 흘리게 된 것이다. 고무를 영어로 러버(rubber)라고 하는데, 생고무로 '문지른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1839년 찰스 굿이어가 고무의 고온도 유황 처리법을 발견하면서 질 좋은 고무 제품들을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지우개의 품질도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요즘의 지우개는 꼭 고무나무에서 얻는 천연 고무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석유화학 공업의 발달로 합성 고무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지우개의 90퍼센트가 염화 비닐을 주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지우개이다.

고무나 플라스틱 지우개로는 연필 아닌 것들, 즉 잉크나 물감으로 쓴 것들을 지우지는 못한다. 애써 타이핑한 서류로 맨 마지막 한 글자를 잘못치면 처음부터 다시 쳐야만 한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틀린 글자 위에 바르는 흰 용액이다. 액체로 된 지우개인 수정액은 1960년대에 미국의 어느 여비서가 낸 아이디어이다. "잉크, 연필 또는 분필 자국을 지우는 데 사용하는 고무 또는 다른 물질.
오늘날의 지우개는 보통 고무로 접착된 식물성 기름, 고운 속돌가루, 황을 혼합해 만든다. 혼합물은 고무가공기계로 가공·압출하여 가황처리한다. 1752년에 프랑스 학사원은 회보 〈프로시딩스 Proceedings〉에서 흑연 자국을 지우는 데 남아메리카의 어떤 나무들에서 생산되는 식물성 수지인 탄성고무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1770년에 영국인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탄성고무에 고무(rubber)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흔적을 지우는(rub out) 데 탄성고무를 사용한 때문이었다. 1858년 3월 30일 미국 뉴욕 시의 조지프 레첸도르퍼가 최초로 지우개가 달린 연필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고무지우개에는,
생고무를 주원료로 해서 이것을 배합 ·혼합→성형→재단의 공정을 거쳐 만드는 것과,
식물유(채종유)와 염화황을 주원료로 해서 배합→화학반응→재단의 공정을 거쳐서 만드는 유성(油性)고무의 2종류가 있다. 용도에 따라 연필용, 잉크용, 타이프라이터용, 잉크 ·연필용 양성고무로 나누어지며, 특히 유성 고무지우개는 이 밖에 특수용으로서 클리너용이 있다.

잉크지우개
잉크로 쓴 글자를 지우는 데 쓰는 물건. 수용성잉크용과 유용성잉크용이 있다. 수용성잉크용 잉크지우개에는 일액식(一液式)과 이액식(二液式)이 있는데, 일액식은 표백분의 수용액만으로 탈색하고 이액식은 그 밖에 타닌산제이철 등의 유기레이크를 제일철로 환원하여 무색으로 만드는 옥살산을 주원료로 하고 있다. 또한 제일액과 제이액을 구분하기 위해 보통 제이액은 엷은 적색을 띠고 있다. 염료잉크는 제일액으로 지울 수 있으나 블루블랙잉크를 지울 때는 이액식을 사용한다. 유용성잉크용 잉크지우개는 속에 유용성잉크의 용제를 투입시킨 마킹펜타입(marking pen type)으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필기면을 문질러서 지우는데, 불침투면에 쓴 것은 지울 수 있어도 침투면에 쓴 것은 지우기가 어렵다.

고무지우개의 슬픈유래
몇 해 전 미국의 유명한 과학출판인 존 브록만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저명한 과학자 1백10명에게 `지난 2천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컴퓨터에서부터 피임약,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대답이 과학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 중 `사이버 문화` 전문가로 꼽히는 과학저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매우 인상적인 답안을 제출했다. 그가 내놓은 답은 바로 고무 지우개. 거기에다 컴퓨터의 `del`키와 `화이트`. 헌법 수정 조항 등을 덧붙였다. 그는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을 꼽고 싶다고 했다.

만약 되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은 물론 정부나 문화,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러시코프는 주장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이며 타임머신인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이티 섬에서 처음 고무를 발견하고 3백년이 지난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고무 지우개가 처음 만들어졌다. 산소와 암모니아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조셉 프리스틀리는 연필로 쓴 글자를 주사위 모양으로 자른 고무 뭉치로 문지르면 깨끗하게 지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전까지 빵 조각을 문질러 글씨를 지웠던 사람들에게 고무 지우개는 매우 유용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래서 지우개의 모습으로 처음 유럽인들에게 선보인 고무를 아직도 영어권 사람들은 `rubber(문지르는 것)`라고 부른다.

물론 고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지우개가 아니라 타이어 때문이었다.

19세기 중엽 자전거나 증기 자동차에 타이어를 장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만해도 튜브 없이 속까지 전부 고무로 돼 있어 평평한 길을 달릴 때조차 덜컹거리는 진동을 느껴야만 했다고 한다. 19세기 말 공기가 들어간 고무 타이어를 자전거에 장착하고 실용화한 사람은 프랑스의 미슐랭(Michelin)이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미쉐린 타이어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자동차 타이어에 고무가 대량으로 쓰이게 되면서 천연고무에 관한 불행한 역사가 시작됐다. 브라질의 광대한 삼림에서 자라던 야생 파라 고무나무는 인간의 수요를 따라오지 못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고무업자들은 채찍질을 해가며 남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고무 채집을 강요했다.

혼자서 하루 1백50그루나 되는 나무를 상대해야만 정해진 양을 채울 수 있었던 인디오들은 매일 30㎞를 돌아다녀야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11년 동안 4천t의 고무를 채집하느라 무려 3만명에 이르는 인디오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몇 십년 후 이런 고무 착취의 제국주의 역사가 종식된 계기 중 하나는 천연 고무를 대신할 합성고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과학기술자들은 석회와 석탄을 이용해 합성고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우개 덕분에 필통 속 친구로 오랫동안 함께 했던 고무. 그 안에도 이런 아픈 역사가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